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논란 (문단 편집) === 페리 아리아케호 전복사고 === ||[[파일:attachment/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논란/PN2009111301000242_-_-_CI0003.jpg]]||[[파일:tipped_ferry_2013_6_11.jpg]]|| || 옆으로 쓰러지는 페리 아리아케호 ||<-2> 완전히 좌초된 페리 아리아케호 || 2009년 11월 13일, 화물과 7명의 승객을 태우고 운항중이던 [[마루에이 페리]]사의 카페리선인 '''Ferry Ariake'''('''フェリーありあけ. 페리 아리아케''' 또는 '''아리아케호''')가 일본 미에현 앞바다에서 전복된 사고. 페리 아리아케호는 2400톤의 화물과 7명의 승객, 22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사고 전날인 2009년 11월 12일 17시에 도쿄항 페리 부두를 떠나 가고시마 시부시로 향했다. 초속 15.3m, 파도 높이 4.59m, 파도 주기 10초의 악천후인 사고 해역(미에현 근해의 구마노해)을 21노트의 속도로 항해 중이던 13일 5시 13분 경, 좌현 뒤쪽으로부터 강한 파도가 몰려왔다. 이로 인해 '''선체는 우현 쪽으로 20~30도 가량 기울며 왼쪽으로 급선회'''하였고 이후 45도까지 기울었다가 선원들의 대처로 [* 벨러스트 탱크 조정 및 조타] 다소 회복하여 30~35도 사이를 오갔다. 왼쪽으로 선회함에 따라 선박은 북북서쪽으로 향하게 되고, 우현쪽으로 바람을 맞아 한때 기울어짐이 25도까지 회복되기도 하였으나, 결국 선체는 오른쪽으로 계속 기울어졌다. 승객과 승무원은 제4관구 해상보안본부의 구조 활동으로 '''승객 7명과 승무원 21명은 전원구조''' 되었으나, 선박은 미에현의 시치리미 해변에서 200m 가량 떨어진 얕은 바다에 좌초하여 90도까지 기울어 전복되었다. 고박되어 있지 않았던 화물이 한 쪽으로 몰리며 고박되어 있던 다른 화물을 덮쳐 과도한 하중으로 고박장치가 파손, 화물이 우현 쪽으로 쏠려 선체가 왼쪽으로 급선회하게 되었고 그 중에 다시 파도를 맞아 선체가 45도 넘게 기울며 복원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다. 세월호 특보를 방영하면서, SBS 뉴스에서는 여기 서술하는 페리 아리아케호 사고 사건을 보도했다. 여기서 사고가 일어난 [[마루에이 페리]]사가 세월호가 되기 전의 페리 나미노우에를 운행하였던 회사였다는 점이다. 선박이 건조된 곳도 하야시카네 선거이고, 배수량도 7천톤 안팎에, 건조시기도 1년차이며, 이밖에도 전체적인 사고 과정이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2266|해당 기사 1]] [[http://w3.sbs.co.kr/news/newsEndPage.do?news_id=N1002352267|해당 기사 2]] 그러나 SBS 보도와는 달리 전복 후 좌초된 페리 아리아케호가 건조된 곳은 미쓰비시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이다. 그리고 뉴스대로 무게나 크기, 생김새 등의 주요 제원은 흡사한 사실이었지만, 정작 페리 나미노우에와는 승객정원도 2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선박이라 내부설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 승객정원이 다를 경우 내부 구조가 상당히 달라진다.] [[http://idyllicocean.com/shipsdb/ship2_info.php?lang=jp&id=75|관련자료]] 더욱이 이 사고에서의 선장과 승무원들의 행동은 세월호 사고와 비교될 정도로 정반대였다는 사실이다. [[http://www.mlit.go.jp/jtsb/ship/rep-acci/2011/MA2011-2-2_2009tk0012.pdf|페리 아리아케 사고조사 보고서]] 사고 당시 선장과 승무원의 대응을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아침 5시 14분에 이상을 느낀 선장은 조타실(선교)로 이동, 05시 20분경 선체가 우현으로 약 30~35도로 돌아간 사실을 알게된다. 5시 22분경 해상 보안청에 전화로 사고상황을 설명하여 헬기 구조를 요청하는 한편, 국제 VHF 채널 장치에 선박조난 신호를 발신하고, 그 후 회사측으로 사고에 대한 안전관리 규정(사고처리) 기준에 의거한 비상대책본부 설치를 요청했다. '''선장은 사무장에게 승객의 안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함과 동시에 승객 및 승무원에 대하여 현상 및 해상보안청에 구조를 요청했다. 선내방송으로 선박의 상황을 설명하고 구명조끼 착용을 지시했다. 승무원들은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착용시켰고, 갑판으로 나와 대기하도록 했다.''' 7시 30분경 헬기가 도착하자 '''승객 7명을 먼저 보냈고 그 뒤에 승무원 14명을 헬기를 통해 내보냈다. 선장과 항해사, 기관사 등 핵심 선원 6명은 헬기를 타지 않고, 끝까지 남아 있다가 기관 긴급정지를 수행, 그 후에서야 비상구명정으로 탈출했다.''' 물론 세월호보다는 [[공기수송(교통)|승객 수가 훨씬 적었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이른 새벽에 갑자기 일어난 사건임에도 당황하지 않고 원칙대로 행동한 결과였다. 이 사고를 조사한 일본 정부 보고서는 화물 관리가 느슨했다는 점만 지적했고 선원들의 대처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결론냈다. 선장이 승객과 승무원들을 먼저 내보낼 정도로 배려한 점에선 정말 모범적인 자세라고 하겠다.[[http://imnews.imbc.com/replay/2014/nwdesk/article/3450874_13490.html|MBC 분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